How to Be a Serious Reader
뉴욕타임스 북리뷰 섹션 책임자가 '미들마치'를 안 읽었고, 그걸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영문학 교수들은 테일러 스위프트가 메리 셸리만큼 훌륭하다고 말한다. 문화 엘리트가 스스로 엘리트이길 포기한 시대에 대한 대화.
문학 비평가 헨리 올리버와의 인터뷰인데, 요즘 문화계가 '속물적 필리스틴(Philistine supremacy)' 상태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문제는 고급문화를 모르는 일반인이 아니라, 문학 엘리트 자체가 셰익스피어 대신 '석세션'에 집중하고 셀리 루니 소설 리뷰의 절반은 작가 본인의 정치 성향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프레스티지 TV가 등장하면서 문화 비평의 중심축이 이동했고, 결국 돈과 클릭이 되는 쪽으로 흘러갔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올리버는 브랜든 테일러나 캐서린 레이시 같은 작가들이 여전히 진지한 리얼리즘과 아이디어 소설을 쓰고 있다고 평가한다. 대화는 '좋은 취향(taste)'이란 무엇인가로 이어지는데, 취향은 선호(preference)와 다르며 지식에 기반한 판단력이라는 것. 공공 도서관에서 10년째 '피네건의 경야'를 읽는 모임 이야기를 예로 들며, 비민주적으로 보이는 모더니즘 문학도 사실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말한다.
셀리 루니의 최신작이 사실 자폐 스펙트럼에 관한 흥미로운 소설인데, 모든 리뷰가 "왜 율리시스 스타일을 썼냐"는 불평으로 도배됐다는 것. 뉴요커는 신작 핀천 소설을 "핀천 팬에겐 좋은데 나머지 우리는요?"라는 제목으로 다뤘다.
문화 비평이 알고리즘과 구독자 수에 종속되면서 생긴 변화를 정확히 짚어낸다. AI 시대에 인간의 취향과 판단력이 더 중요해진다는 역설도 흥미롭다. 결국 "모두를 위한 문화"라는 민주적 충동이 오히려 깊이 있는 문화 경험의 문턱을 높이고 있다는 진단이 날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