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ning Culture Digest

이브닝 컬처 다이제스트

2026년 4월 29일 수

01 RSS/Aftermath

'We've Been A Little Bit Too Romantic About The Idea That We Should Have Employees And Give People Long-term Job Security' Is An Extraordinary Thing For A Video Games CEO To Say On Record

"우리 직원들에게 장기 고용 안정성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좀 너무 낭만적이었던 것 같아요." 게임 업계 CEO가 공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짜로.

어떤 글이냐면

『Monument Valley』 시리즈로 유명한 Ustwo Games의 CEO Maria Sayans가 Game Developer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해버렸다. 런던에 본사를 둔 탓에 연금 같은 복지가 있는 정규직을 고용하다 보니 경쟁사보다 비용이 많이 들고, 앞으로는 핵심 인력만 남기고 나머지는 계약직으로 채울 계획이라고. "업계에서 20년 일했고, 2000년대 초반에 합류한 우리 세대는 정말 좋은 대우를 받았죠. 그런 안정성을 제공하고 싶지만..." 이라면서도, 결국 자신이 CEO인 회사의 고용 방식을 마치 어쩔 수 없는 일처럼 포장했다. 참고로 Ustwo는 노조 파괴 전력도 있는 회사다.

재밌는 포인트

대부분의 CEO들은 최소한 '직원을 아낀다'는 제스처라도 취하는데, 이 사람은 그냥 "장기 고용은 너무 낭만적인 생각이었다"고 대놓고 말해버렸다. 업계 내부에서도 "이걸 공개 인터뷰에서 말한다고?"라는 반응.

왜 지금 중요한가

게임 업계는 지난 몇 년간 대규모 해고의 연속이었고, 이제 경영진들이 아예 '안정적 고용'이라는 개념 자체를 공개적으로 부정하기 시작했다. 한때 암묵적으로 유지되던 "적어도 겉으로는 직원을 신경 쓰는 척"이라는 최소한의 체면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이건 비단 게임 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산업 전반에서 벌어지는 고용 불안정의 정상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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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RSS/Defector

‘Michael’ Is The Most Cynical Attempt At Biopic Myth-Making Yet

마이클 잭슨 자서전 영화 'Michael'이 전 세계 박스오피스를 강타하고 있지만, 이건 영화가 아니라 유산 관리 재단이 만든 2시간짜리 PR 영상이다.

어떤 글이냐면

Antoine Fuqua 감독의 'Michael'은 마이클 잭슨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인데, 솔직히 영화라기보다는 노래방 체험에 가깝다. 잭슨 5 시절부터 'Thriller' 앨범 제작까지, 이미 다 아는 명장면들을 재현하면서 "마이클은 예민하고 외로운 사람이었다"는 메시지만 반복한다. 가장 문제적인 건 폭력적인 아버지 Joe Jackson의 학대를 극도로 희석시키고, 마이클이 아이들과 순수하게 교감하는 장면들을 의도적으로 강조한다는 것. 여러 차례 제기된 아동 성폭력 혐의는 완전히 삭제됐고, 제작진은 "속편에서 다룰 수도 있다"며 변명한다. 평론가들은 혹평했지만 팬들은 극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결국 이 영화는 'Leaving Neverland' 다큐멘터리 이후 실추된 이미지를 복구하려는 유산 관리 재단의 필사적인 시도다.

재밌는 포인트

애완 원숭이 버블스가 마블 히어로처럼 등장한다는 표현. 성형수술, 진통제 중독, 피터팬 집착 같은 요소들이 마블 영화의 이스터에그처럼 살짝살짝 뿌려져 있다는 비유가 이 영화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다.

왜 지금 중요한가

'Bohemian Rhapsody' 이후 음악 바이오픽은 완전한 IP 비즈니스가 됐다. 스프링스틴 영화도, 이 잭슨 영화도 모두 같은 공식—날 선 부분은 다 깎아내고 히트곡만 배치하면 된다. 하지만 'Michael'은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성폭력 혐의를 단순히 '빼는' 수준이 아니라, 아이들과의 순수한 교감 장면으로 적극적으로 '덮으려' 한다. 이건 예술과 예술가 분리 논쟁을 넘어서, 기업이 역사를 어떻게 재편집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케이스다. 비평은 최악이지만 흥행은 대박—결국 대중은 불편한 진실보다 편안한 환상을 선택한다는 냉소적인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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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RSS/IndieWire

Why ‘Euphoria’ Creator Sam Levinson Had to Reshoot Episode 3’s Shocking Climax

샘 레빈슨이 결혼식 날 밤 네이트가 발가락 잘리는 장면을 찍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음 날 통째로 다시 찍었다. 문제는 액션이 아니라 언어였다.

어떤 글이냐면

Euphoria 시즌3 에피소드3에서 네이트(제이콥 엘로디)가 결혼식 날 밤 빌린 돈 독촉하러 온 청부업자한테 얻어터지고 발가락까지 잘리는 장면이 나온다. 레빈슨은 처음엔 전형적인 액션 신 스타일로 찍었는데, 퇴근길에 "빠른 컷, 벽에 꽂히는 헤드샷... 이건 우리 언어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다음 날 촬영 감독 마르첼 레브와 다시 설계한 씬은 아예 관점이 달라졌다. 웨딩드레스 입은 캐시(시드니 스위니)를 전경에 두고, 그녀가 "내 결혼식인데 이게 무슨 일이야?"라며 울부짖는 동안 뒤에서 네이트가 계단 위아래로 두들겨 맞는 구도. 남편은 피투성이인데 신부는 자기 결혼식 망친 것만 한탄하는, 캐시의 나르시시즘에 뿌리를 둔 장면으로 재탄생했다.

재밌는 포인트

레빈슨이 현장에서 감독으로서 작가인 자신에게 "충성심 따위 없다"며 대본 내용을 뒤엎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는 고백. 세트장에서 언어를 지키는 게 각본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뜻.

왜 지금 중요한가

Euphoria는 매 시즌 새로운 필름 스톡, 포맷, 렌즈를 선택하며 "시즌만의 언어"를 만드는 걸로 유명한데, 이번 시즌3는 서부극 문법을 차용한다. 근데 그 언어가 단순히 비주얼 스타일이 아니라 씬 블로킹, 커버리지, 심지어 재촬영 결정까지 좌우하는 통일된 논리라는 게 흥미롭다. 장르를 차용해도 리듬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 결국 스타일이 곧 내러티브인 시대에, 형식적 일관성이 어떻게 캐릭터 심리까지 재정의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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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RSS/The Honest Broker

The NY Times Asked Me to Pick the Greatest Living American Songwriters

뉴욕타임스가 14개월 만에 발표한 "미국 최고의 생존 작곡가 30인"—정작 선정에 참여했던 음악 평론가 Ted Gioia의 리스트와는 5명밖에 안 겹쳤다.

어떤 글이냐면

2025년 발렌타인데이, 뉴욕타임스 매거진 편집장이 Ted Gioia에게 메일을 보냈다. "미국 최고의 생존 작곡가 25인을 뽑는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는 내용이었다. Gioia는 고민 끝에 15명의 후보 리스트를 제출했는데, 처음 6명은 쉽게 나왔지만 9명 이후부터는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타임스는 그의 리스트를 공개해도 되냐고 물었지만 그는 거절했다—자기 구독자들에게만 공유하겠다면서. 그리고 제출 마감일(2025년 2월 28일)이 지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가 선정했던 작곡가 중 한 명은 몇 달 뒤 세상을 떠났고, 2025년이 끝날 때쯤엔 프로젝트가 폐기된 줄 알았다. 그런데 14개월이 지난 어제, 타임스가 마침내 결과를 발표했다. 리스트는 30명으로 확장됐고, Gioia가 뽑은 15명 중 단 5명만 최종 리스트에 올랐다. 그것도 그의 몇몇 후보는 "의심스러운 기준"으로 부적격 처리됐다고.

재밌는 포인트

발렌타인데이에 받은 작업 의뢰가 14개월 동안 소식 없다가 갑자기 발표되는 사이, 리스트에 포함됐던 작곡가가 실제로 사망했다는 사실. 음악 리스트도 유통기한이 있는 셈.

왜 지금 중요한가

"최고의 작곡가"를 선정하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주관적이고 정치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전문가 100명에게 물어봐도 합의점은 5명 정도에 불과하다는 건, 음악 산업에서 "정전(canon)"을 만드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스트리밍 시대에 취향은 무한히 파편화됐고, 세대별·장르별 기준은 더 이상 겹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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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RSS/IndieWire

Anne Hathaway’s Controversial New Horror Movie About a ‘Tradwife’ Is Already Hell Online

앤 해서웨이의 신작 호러 영화 '예스터이어'는 아직 촬영도 안 들어갔는데 벌써 온라인에서 전쟁터가 됐다. 'tradwife(전통적 아내)' 인플루언서가 19세기로 타임슬립해서 자기가 미화했던 그 지옥을 직접 산다는 설정 하나로.

어떤 글이냐면

작가 캐로 클레어 버크의 소설 '예스터이어'가 영화화되는데, 주인공은 SNS에서 '전통적 아내' 라이프를 팔던 인플루언서 나탈리다. 어느 날 그녀가 1855년 아이다호로 떨어지면서 전기도, 스태프도, 자유도 없는 진짜 19세기 가정주부의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 아마존 MGM이 경쟁 입찰 끝에 판권 따냈고, 해서웨이가 주연 겸 프로듀서로 붙었다. 근데 문제는 영화가 제작 단계에도 못 들어간 지금, 이미 좌우 양쪽에서 난리가 났다는 것. 보수층은 "좌파의 전통 가정 공격"이라며 분노하고, 진보층은 "가부장제 응징 서사"라며 환호하는데, 정작 소설은 거대한 사회 비판보다는 한 개인이 자기 거짓을 견디다 무너지는 이야기에 집중한다. 버크는 가디언 기고문에서 tradwife 콘텐츠가 "실제 삶이 아니라 소비되기 위해 구성된 이미지"라고 짚었고, 소설도 그 허상이 실체로 굳어지는 공포를 파고든다.

재밌는 포인트

'tradwife'라는 단어 자체가 원래 인셀(incel) 커뮤니티에서 시작됐다는 사실. 지금은 인스타 미학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포장됐지만, 그 뿌리는 여성 혐오 온라인 문화였다.

왜 지금 중요한가

2026년 미국에서 젠더 담론이 '룩스맥싱', '매노스피어' 같은 슬랭으로 일상화되고, 여성 혐오 언어가 주류로 스며드는 시점에 이 영화가 나온다. 영화 자체보다 그걸 둘러싼 분노가 이미 마케팅이 되는 구조 — '더 헌트'(2020)의 전철을 밟을지, 아니면 '핸드메이즈 테일'처럼 시대정신을 건드릴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내가 거짓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시기에, 가짜가 현실이 되는 호러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먹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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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RSS/Eurogamer

Call of Duty fans debate upcoming movie director Peter Berg's years-old comments, where he once called games "pathetic" and gamers "weak"

"너네 게임 따위나 하냐, 밖에 나가서 운동해라." 2013년에 게이머를 약골 취급했던 감독이 2028년 콜 오브 듀티 영화를 만든다니, 팬들이 들고 일어났다.

어떤 글이냐면

피터 버그 감독이 2013년 한 인터뷰에서 콜 오브 듀티 같은 전쟁 게임을 "한심하다(pathetic)"고, 게이머들을 "약하다(weak)"고 비난한 발언이 최근 재소환됐다. 당시 그는 "비디오 게임에 4시간씩 앉아 있는 건 약골이나 하는 짓"이라며, "밖에 나가서 뭐라도 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사람이 지금 콜 오브 듀티 영화(2028년 6월 30일 개봉 예정)의 감독이라는 것. 팬들은 "게임을 이해하지도 존중하지도 않는 사람이 어떻게 원작의 정신을 담을 수 있냐"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일부는 "10년도 더 지난 발언이니 생각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고 옹호하지만, 다른 이들은 "애초에 왜 그를 뽑았냐"며 제작진의 선택 자체를 의심한다.

재밌는 포인트

버그 감독의 전작 중엔 리한나 주연의 흥행 참패작 '배틀쉽'이 있다. 군사물에 대한 애정은 있되, 대중오락물 감각은 검증되지 않은 셈.

왜 지금 중요한가

게임 원작 영화의 성패를 가르는 건 결국 "원작에 대한 이해"다. 최근 성공한 게임 각색작들(더 라스트 오브 어스, 폴아웃 등)은 모두 원작 팬층을 존중했다. 하지만 버그처럼 게임 문화 자체를 폄하했던 사람이 수십억 달러 프랜차이즈를 맡는다면? 이건 단순히 과거 발언 논란이 아니라, 게임을 여전히 '2류 문화'로 보는 할리우드의 시선이 얼마나 바뀌었는지에 대한 리트머스 테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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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RSS/Defector

Texas Tech Transfer QB Brendan Sorsby Leaves School, Enters Gambling Rehab

Texas Tech의 5백만 달러짜리 쿼터백이 도박 중독으로 학교를 떠나 재활 시설로 향했다. 대학 스포츠의 NIL 황금 시대가 맞닥뜨린 가장 아이러니한 스캔들.

어떤 글이냐면

Cincinnati에서 Texas Tech으로 이적하며 5백만 달러 NIL 계약을 받은 쿼터백 Brendan Sorsby가 도박 중독 치료를 위해 프로그램을 떠났다. NCAA 조사에 따르면 그는 수천 건의 온라인 스포츠 베팅을 했고, 심지어 2022년 자신이 소속된 Indiana 팀 경기에도 돈을 걸었다. Texas Tech은 석유 재벌 동문 Cody Campbell의 후원으로 전 종목에 걸쳐 NIL 자금을 쏟아부으며 CFP 4시드까지 올라간 학교인데, 그 상징적 영입이었던 Sorsby가 이런 식으로 무너진 셈이다. 봄 시즌 게임에서 4개 터치다운을 던지며 좋은 출발을 보였던 그는 현재 재활 기간이 "무기한"으로 설정된 상태다.

재밌는 포인트

Cincinnati는 Sorsby의 이적이 NIL 계약 위반이라며 연방법원에 1백만 달러 소송을 걸었고, 그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Cincinnati Reds 야구 경기의 "볼과 스트라이크"에까지 베팅했다고 알려졌다.

왜 지금 중요한가

대학 스포츠의 NIL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선수들이 수백만 달러를 손에 쥐게 됐는데, 동시에 스포츠 도박 합법화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두 트렌드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벌어진 첫 메이저 스캔들이 바로 이 사건이다. 기사 필자의 표현대로 "스포츠 도박 스캔들이 곧 일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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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RSS/Defector

I Have No Pages

Defector의 칼럼니스트 Drew Magary가 고백합니다. "나는 원고가 한 장도 없다." 2021년 이후 책을 출간하지 못한 작가의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자기 반성문.

어떤 글이냐면

독자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이 칼럼은 한 작가 방문 프로그램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하루 8시간 글 쓰고, 모니터 3대를 쓰고, 동시에 책 3권을 작업하는 그 프로 작가와 달리, Magary는 2024년 초에 4만 단어짜리 소설 아웃라인을 완성했지만 그 이후 프롤로그와 폐기한 1장만 썼을 뿐이라고 털어놓습니다. 부모님 간병, 자녀 대입, 심장병 같은 현실적인 이유들이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이제 안 써도 되는" 위치에 오른 게 더 큰 이유였다고. 하지만 50세를 앞두고 그는 다시 원고를 쓰겠다고 독자들 앞에서 공개 선언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젓가락 사용법, 요리의 마법, 대마초 실수담, 시대에 뒤떨어진 팀명(토론토 랩터스, 워싱턴 위저즈) 같은 가벼운 주제들로 채워진 전형적인 Funbag 칼럼 형식.

재밌는 포인트

40페이지 넘는 소설 아웃라인을 완성했는데도 정작 본문은 한 줄도 못 쓴 작가의 고백. "아웃라인 짜면 빨리 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안 써졌다"는 역설이 모든 창작자의 아이러니를 담고 있습니다.

왜 지금 중요한가

크리에이터 경제가 성숙하면서 많은 작가/아티스트들이 Magary처럼 "경제적으로 안정됐지만 창작 동력을 잃은" 단계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의 절박함이 사라진 뒤 어떻게 다시 창작 에너지를 찾을 것인가는 모든 미드커리어 크리에이터가 직면한 질문입니다. 또한 Z세대의 빈티지 패션 선호, 중고 의류 시장 성장 같은 소비 트렌드 변화도 자연스럽게 담겨 있어, 단순한 개인 에세이를 넘어 문화 관찰 칼럼으로도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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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RSS/Aftermath

I, For One, Welcome The Return of 'Retro' Anime

12화 안에 모든 걸 증명해야 하는 스트리밍 시대에, 50화처럼 느긋하게 펼쳐지는 애니메이션이 돌아오고 있다. 그리고 이게 오히려 신선하다는 게 아이러니.

어떤 글이냐면

스트리밍이 TV 제작 방식을 바꾸면서 애니메이션도 '3화 법칙'에 갇혔다. 처음 세 화 안에 작화 폭발과 스펙터클을 보여주지 못하면 시청자는 이탈하고, 매주 온라인에서 "이거 피크인가 낚시인가" 심판받는 시대. 근데 지금 선라이즈의 《마오》와 본즈의 《Daemons of the Shadow Realm》 같은 작품들이 옛날 애니메이션 특유의 느긋한 페이싱을 되살리고 있다. 장르를 넘나들고, 세계관 구축에 시간을 들이고, 괴물 퇴치 한 화 사이에 캐릭터들이 농담 주고받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 방식. 다카하시 루미코와 아라카와 히로무라는 거장의 원작을 OG 스튜디오가 만드는 것도 한몫하지만, 핵심은 "매 화가 이벤트여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이야기가 자기 속도로 흘러가게 둔다는 것. 그리고 이런 흐름은 《공각기동대》 리메이크, 《매직 나이트 레이어스》 리메이크, 데즈카 오사무의 《리본의 영웅》 넷플릭스 애니화까지 이어지고 있다.

재밌는 포인트

BL 애니메이션 《Go For It, Nakamura!》가 다카하시 루미코풍 둥근 캐릭터 디자인에 야스하 같은 시티 팝 엔딩곡까지 틀면서 레트로 감성의 정점을 찍고 있다는 것. 비소년 장르도 12화 장애물 코스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

왜 지금 중요한가

스트리밍 시대의 역설이 여기 있다. 모든 콘텐츠가 '구독료를 한 달 더 뽑아낼 수 있는가'로 평가받는 시스템이 오히려 "예전 방식"을 틈새 전략으로 부활시켰다. 느리고 장르가 뒤섞이고 매 화가 이벤트가 아닌 애니메이션이, 이제는 그 자체로 차별화 요소가 된 것. 결국 프레스티지 압박이 역설적으로 프레스티지를 벗어난 콘텐츠에 공간을 열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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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RSS/Aftermath

I Love My Computer Perfume

먼지 냄새가 너무 강해서 재채기가 나오는데도 계속 뿌리고 싶은 향수가 있다. 1999년 지하실 컴퓨터방 냄새를 재현한 향수 이야기.

어떤 글이냐면

agar olfactory의 '세로(Cero)'는 생태 붕괴를 탐구하는 향수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데, 1999년 컴퓨터가 방 한 칸을 차지하던 시절의 냄새를 재현한다. 뜨거운 금속, 먼지, 마우스패드가 뒤섞인 그 냄새 말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 지하실에서 불법 복제 DOS 게임을 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이 향수를 쓴다. 비슷한 콘셉트의 'Ghost In The Shell' 향수는 꽃향과 파우더로 미화했지만, 세로는 더 직설적이다. 청소 한 번 안 한 델 컴퓨터에 머리를 들이밀은 것 같은 냄새. 시간이 지나면 마우스패드 냄새는 사라지지만 금속과 먼지 냄새는 피부에 남는다. 이건 컴퓨터가 가능성의 공간이던 시절의 냄새이자, 동시에 완전한 인류 멸종 시리즈의 첫 장이기도 하다.

재밌는 포인트

향수가 너무 리얼해서 먼지 냄새 때문에 실제로 재채기가 나온다는데도 계속 쓴다는 것.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고 '더러운' 냄새를 그대로 재현하는 게 오히려 매력 포인트.

왜 지금 중요한가

디지털 노스탤지어가 시각과 청각을 넘어 후각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는 신호다. 단순히 예쁜 추억이 아니라 먼지와 열기까지 포함한 '날것의 기억'을 상품화하는 방식은, 컴퓨터가 지배계급의 통제 도구가 된 지금 시점에서 더 의미심장하다. 과거를 이상화하지 않으면서도 그리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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